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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에서 제일 무서운 게 돈입니다. 

예전 군사독재 시절에야 권력-총칼이 제일 무서웠지만, 지금은 돈이 이 사회의 제일 무서운 독입니다. 


그야말로 ‘자본’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게 자본주의 사회니까요.


이렇게 무서운 게 돈이기 때문에, 

평소 말-글을 진보적으로 하는 지식인도, 

돈 문제라면, 태도가 싹 달라지기 십상입니다. 


지난 번 [박홍규 교수 따라 자본주의 벗어나기 7편 – 돈 ①]에서,



진보적 교수들에게 “우리 교수들 월급을 조금씩만 줄여 받으면 시간강사들이 제대로 월급을 받을 수 있는 것 아니냐. 우리 월급을 깎아달라고 대학 측에 요구하자”고 제안했다가,

진보 교수들이 갑자기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면서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겼어”라고 자리를 뜨는 바람에, 


일본으로 교환교수를 떠나는 박 교수를 위한 환송연이었는데도 불구하고(그러니 박 교수가 얻어먹어야 하는),
결국 박 교수 혼자 남겨져(그는 핸드폰도, 차도 없으니까),
자신에 대한 환송연 술값-밥값을 직접 내고 나왔다는 

한국판 처절한 돈 이야기(진보적 교수라도 돈 문제에는 얄짤없다능ㅋㅋ)를 해드린 바 있습니다.


오늘은 이어서, 

박 교수가 월급을 쓰는 방식입니다. 


그의 책에 보면, 자신이 돈 쓰는 얘기가 더러 나오는데요,
그 내용들을 모아서 전해 드립니다.

우선 ‘대한민국을 눈물로 씁니다’의 79쪽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저는 저축이나 투자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고, 버는 만큼 쓰는 쪽이며…”


“부자 되세요~”가 인사말인 한국에서, 

저축이나 투자에 관심없고, 버는 족족 쓰는 사람, 더구나 교수 봤어요?ㅎㅎ


사회부적응자 또는 한심한 사람으로 낙인 찍히기 쉬운 고백이 바로 "난 버는 족족 써" 입니다만...



물론 박 교수는 돈을 기준으로 세상을 생각하지 않기에, 

"돈 안 모으는 한심한 사람"이라고 누군가가 비난해도, 

그냥 웃고 말 것이 분명하기에, 

이런 세상의 평가 자체가 우스워질 테지요.ㅎㅎ



또, 박 교수의 책 ‘서른 이후 문득 인생이 무겁게 느껴질 때’의 32쪽에도 비슷한 문장이 나옵니다.


“월급의 3, 4분의 1 정도는 남을 위해 써서 저축도 없다.”

월급의 3분의 1이나, 4분의 1을 남을 위해 쓴다고요? 

저는 놀랐습니다. 매달 나오는 월급에서 3분의 1 또는 4분의 1을 떼어내 남을 위해 쓰면 도대체 자신은 쓸 돈이 없어지잖아요???


그가 도대체 어떤 다른 이를 위해 월급의 3 또는 4분의 1을 쓰는지에 대해서는 다른 책 ‘젊은 날의 깨달음’에 나옵니다.

이 책 204쪽에서 박 교수는
“전혀 팔리지 않는 운동권 그림 두 점을 1천만 원에 사서 박물관에 기증했던 것도 그런 속죄의 하나였다. 운동권 출신 젊은이들이 출판사를 차리면 그냥 원고를 건네주었다. 내가 독자라고 생각하는 노동자들이 조금이라도 싸게 책을 사보기를 희망해서이기도 했다”고 썼습니다.

운동권 그림이라고 있잖아요. 이른바 민중미술이라고 하는...
헌데, 미술판에서 이 민중미술은 전혀 인기가 없어요. 

전혀 팔리는 그림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런 그림 두 점을 1천 만원에 사주는 것,
그리고 책의 인세를 받지 않고 원고를 그냥 출판사에 넘기는 것도 (가난한 출판사를 돕고, 또 조금이라도 싸게 책 값이 매겨져 와, 노동자들이 좀더 싸게 사볼 수 있도록 하자는..),
다른 이를 돕느라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는 행동이지요.


그의 책들에 보면, 

그가 존경하는 인물들(그래서 박 교수가 책을 쓰거나 번역해 소개한)에서도 이런 태도가 비슷하게 드러납니다. 


박 교수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 하나인 이반 일리히(진보적 신학자, 사회운동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서른 이후 문득 인생이 무겁게 느껴질 때’의 255쪽에서 그는
“일리히(는) …중략… 스스로 노동하여 번 돈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학교에 돈을 내고 학생들을 가르쳤다. …중략… 스스로 노동해 가난하게 살며 최소한 무료 봉사라도 하는 세상이 과연 올까?”라고 썼습니다.

‘그림자 노동’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 등의 저서를 남긴 이반 일리히는,
자신이 멕시코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세운 학교에서,
수업료를 받는 게 아니라, 자신이 노동을 하면 번 돈을 학교에 갖다주면서 학생들을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교육 빙자해 돈 뜯어내기'가 아마도 세계 최고로 발달한 한국에서, 

'내 돈 내고 가르치기'가 말이 됩니까? 


하지만 일리히는 이런 구상을 가난한 나라 멕시코에서 실현했고, 

박 교수 역시 "그런 날이 과연 올까"라며 희망섞인 발언을 하는 순간입니다. 





그래서 박 교수가 존경하는 또 다른 인물인, 웹 부부(시드니 웹과 비어트리스 웹, 영국의 경제학자이자 운동가)를 소개한 저서 ‘복지국가의 탄생’ 서문에 박 교수는 이렇게 썼습니다. 


“(웹 부부는) 공적인 강의나 저술로 돈을 버는 것을 수치로 생각했다.”

한국에서 중요한 주제 중 하나가, '인문학도 돈 된다'라고 한다면, 

웹 부부 같은 태도는 인문학자를 밥 굶기기에 딱 맞는 소리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자본주의와 제국주의가 맹위를 떨치는 시대에 영국에 살면서,

부유한 집안 출신이기에 굳이 돈을 벌 필요 없이,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의 개념을 영국에 도입하기 위해 활발한 활동을 펼친 웹 부부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생활은 이미 보장돼 있는데, 굳이 원고료-인세나 강연료를 통해 '추가로' 돈을 벌 필요가 없었고, 

그런 태도를 수치스럽게 여겼다는 것이지요. 


"있는 사람이 더 무서운", 

그래서 "99개 가진 부자가 빈자의 1개를 빼앗아 100개를 채우는 게 일상사인

한국에서

일리히나 웹 부부 같은 생각, 

그리고 이런 사람들을 존경하고, 그래서 그들의 삶과 책을 소개하면서, 

스스로도 이런 선례를 따라하고자 하는 박 교수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게 참으로 돌연변이 같은 현상이지요? 



모든 걸 돈으로 환산해 생각하는, 

그래서 돈이 최고-절대 가치이고, 

다른 가치는 거의 묻히는 한국에서, 


돈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해볼 수 있는 여지를 조금이나마 열어준다는 차원에서,

박홍규-일리히-웹부부의 존재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사이의 차이는 크다고 봅니다. 

남들이 하면 나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선례가 중요하며, 

박 교수의 실행과 소개가 의미를 가집니다. 


그래서 저도 생각해봅니다. 나도 박 교수나, 일리히, 웹부부처럼 살 날이 올까 하는 상상을......



<책 읽는 북손탐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재밌는 동영상>




<3.1절 100주년 속살읽기 시리즈~>


[①] 남한의 3.1절과 북한의 3.1절이 다르다고? ‘3월 김정은 답방’을 앞두고 해석 통일 하려면?






[②] 유치장으로 ‘도피’한 민족대표 33인에 대해 일본 학계 “33인은 어떻게 봐도 어이없는데, 33인을 대단하다고 가르치는 남한은 쫌 이상” 혹평





[③] 18살 함석헌 소년은, 3월 1일 그날 일본경찰 코앞에 태극기 마구마구 흔들었는데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3.1운동 속살읽기 ④] “죽기 딱 좋은 날”이라며 3.1거사 반기고 준비한 남강 이승훈 선생의 결기와 실행







<설날에도 항일의 냄새가? 시리즈>


[①] 윤치호는 왜 “총독부가 아무리 '왜설날' 강요해도 조선인은 끝내 설 쇤다”고 썼나?






[②] 염상섭의 ‘지 선생’은 어떻게 침뱉어 만세 부르고, 총독부는 이를 ‘정의롭게’ 만들어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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