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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의 민족대표 33에 대해

젊은이들 가슴에 불길만 당겨놓고,

자기들은 유치장 보호막 뒤로 숨어버린 사람들이란

비난도 있지만...

 

그래도 남강 이승훈 선생 같은 분이 있어서 참으로 다행..

 

일본에서 2.8독립선언서를 숨겨갖고 들어와
조선에서도 거사해야 한다고 알리자,

 

내가 드디어 죽을 날을 찾았다며 반가워했던 남강 이승훈.

 

천도교와 기독교란 이질적인 조직이 만나

거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손병희 이름을 맨앞에”(천도교 측)

이승훈 이름을 맨앞에”(기독교 측)

놓아야 한다는 끗발 다툼이 일어나자,

 

이 사람들아, 그 이름 적는 순서가 죽는 순서인 거 몰라라고 웃으며,

자신의 이름은 저 중간에 쳐박아도 된다고 물러난 이승훈 선생....

 

그의 헌신과 용기에 감동받으며

3.1운동 100주년을 맞습니다


남강 선생이 1907년 설립한 민족주의-기독교 학교 오산학교 1회 입학식 모습.


<3.1절 100주년 속살읽기 시리즈~>


[①] 남한의 3.1절과 북한의 3.1절이 다르다고? ‘3월 김정은 답방’을 앞두고 해석 통일 하려면?






[②] 유치장으로 ‘도피’한 민족대표 33인에 대해 일본 학계 “33인은 어떻게 봐도 어이없는데, 33인을 대단하다고 가르치는 남한은 쫌 이상” 혹평





[③] 18살 함석헌 소년은, 3월 1일 그날 일본경찰 코앞에 태극기 마구마구 흔들었는데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설날에도 항일의 냄새가? 시리즈>


[①] 윤치호는 왜 “총독부가 아무리 '왜설날' 강요해도 조선인은 끝내 설 쇤다”고 썼나?






[②] 염상섭의 ‘지 선생’은 어떻게 침뱉어 만세 부르고, 총독부는 이를 ‘정의롭게’ 만들어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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