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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도 클래식 피아니스트를 초청해

문화 관련 방송을 하니,


그간 정치-역사 책들을 읽느라 바삐 달려온 북손탐도

문화 관련 얘기를 하면서 숨을 좀 돌려볼까 합니다.




이야기를 나눌 대상은 제가 좋아하는 박홍규 교수가 파고든 빈센트 반 고흐입니다.

고흐야 대중적으로 가장 유명한 화가지만,


우리가 상식으로 아는 고흐와, 실제의 고흐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게 박 교수의 해석입니다.




흔히 그를 매우매우 감정적이고, 색깔도 원색을 마구 썼으며, 정신병에 걸린 천재 화가로 알지만,

박 교수의 해석은 전혀 다릅니다.


그가 감정이 격했지만 그만큼 또 냉철한 지성인이기도 했고(비록 정규 학교는 4년밖에 다니지 않았지만),


원색은커녕 항상 세련된 보색으로 화면을 채웠다는 겁니다.



또한 미쳐서 그림을 그리기는커녕 자신의 감정-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일부러’ 미친 듯한 붓 터치를 ‘맨정신으로’ 화폭에 적용했다는 게 박 교수의 해석입니다.



박 교수가 이런 의견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 미술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미술은 뭣도 모르는 법대 교수가 웬…”이라며 비난들을 꽤 해댄 모양입니다. 한국 교수들이 대개 실력은 형편없으면서 남 비난하는 데는 한 가닥 하는 사람들인지라….


그러나, 박 교수 스스로가 그림을 수준급으로 그리는 화가이며,

그가 고흐를 소화하느라 읽은 책의 양,

네덜란드까지 직접 찾아가 눈으로 본 고흐의 그림 등등을 근거로 판단하자면,

웬간한 미술 전문가는 근처에도 못갈 정도의 준비를 하고 자신의 책을 내놓은 게 분명합니다.


그래서 북손탐의 ‘박홍규 교수 따라 빈센트 감상하기’ 시리즈는,

철저히 박 교수의 소개와 해설을 추종합니다.



그의 고흐 해석에서 남다른 점은

1. 고흐는 노동자를 자신과 동격으로 놓고 그린 진정한 노동 화가이며 (그의 시대에는 거의 미친 짓이었던… 왜냐하면 그 당시에 노동자-농민은 아직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2. 고흐는 정규 미술 대학을 다니거나, 또는 미술 거장의 지도를 받은 적이 없지만 그 나름의 치열한 독학 정신으로 그 누구도 흉내내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미술 세계를 펼쳐나갔으며, 또한 매우 많은 책을 읽은 ‘지성적 화가’였다는 해석입니다.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는 고흐와는 매우 다르지요?


오늘은 시리즈의 첫 번째로서,

고흐에게 평생 죽음과도 같은 고통을 준 원인인, 그의 사랑과 성격을 먼저 박 교수의 소개를 따라 알아보겠습니다.


한마디로 고흐는 영화 제목 그대로 ‘러빙 빈센트(사랑하는 빈센트)’였지만, 그의 사랑의 방식은 그의 그림만큼이나 개성적-독보적이었고, 그래서 그는 자신이 사랑한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고 돌팔매질을 당했습니다.



적에게 미움받는 것도 아프지만, 진짜로 가슴깊이 아픈 것은 내가 사랑한 대상이 나를 미워할 때지요?


우리가 “노무현”이라는 세 글자만 나오면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나는 이유도,

바로 그가 세상을 떠난 과정이 마치 고흐 같기 때문 아닐까요?


말 같지도 않은 ‘논두렁 시계’로 조선일보와 짝퉁보수언론들이 노무현을 공격할 때,

그를 지켰어야 할 한경오(한겨레-경향-오마이뉴스)는 약간의 시차를 두고는 바로 짝퉁보수언론들을 쫓아가며 비슷한 논조로 속보 경쟁을 벌였고,


그 과정에서 노통과 친구 문재인 등이 돌이킬 수 없는 충격과 상처를 받았다는 거 아닙니까. 문 대통령도 시간이 지난 뒤 “우리 편인 줄 알았던 언론이 덩달아 우리를 공격하니 정말 아팠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결국 노무현 죽이기를 시작한 건 짝퉁보수언론들 + 국정원이지만,


“최종적으로 방아쇠를 당긴 건 결국 한경오”라는 비난이 나오는 근거입니다.




내가 사랑한 사람이 나에게 던지는 돌팔매는 이렇게 아픈데,

고흐는 평생을 그렇게 살았고,


또 그를 사랑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났어도(그가 죽은 해에 그를 찬양하는 첫 평론을 프랑스의 미술평론가 알베르 오리에가 발표했을 때), 

고흐는 “왜 나 같은 화가를 찬양하나? 나보다 훨씬 잘 그리는 화가 누구누구누구에 대해서는 안 쓰고?”라면서 

“그러지 말아달라”고 오리에에게 편지까지 썼다니, 참 이건 도대체 어찌 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고흐는 알면 알수록 더욱 안 됐고, 가슴이 아련해지는 인물인 듯합니다.

이렇게 고통을 자초한 인물로 고흐를 일단 규정하고,


다음 회에는 그가 “노동자와 함께 하는 노동 화가가 되겠다”고 작정하고,

탄광촌으로, 농촌으로 들어가 그림을 그리다가

결국 ‘돌을 맞고’ 쫓겨나가는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또 만나요~~^^


<책 읽는 북손탐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재밌는 동영상>




<3.1절 100주년 속살읽기 시리즈~>


[①] 남한의 3.1절과 북한의 3.1절이 다르다고? ‘3월 김정은 답방’을 앞두고 해석 통일 하려면?






[②] 유치장으로 ‘도피’한 민족대표 33인에 대해 일본 학계 “33인은 어떻게 봐도 어이없는데, 33인을 대단하다고 가르치는 남한은 쫌 이상” 혹평





[③] 18살 함석헌 소년은, 3월 1일 그날 일본경찰 코앞에 태극기 마구마구 흔들었는데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3.1운동 속살읽기 ④] “죽기 딱 좋은 날”이라며 3.1거사 반기고 준비한 남강 이승훈 선생의 결기와 실행







<설날에도 항일의 냄새가? 시리즈>


[①] 윤치호는 왜 “총독부가 아무리 '왜설날' 강요해도 조선인은 끝내 설 쇤다”고 썼나?






[②] 염상섭의 ‘지 선생’은 어떻게 침뱉어 만세 부르고, 총독부는 이를 ‘정의롭게’ 만들어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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