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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상황을 한 번 상생해봅시다. 


노동자를 그리겠다고 결심한 화가가 있습니다. 그는 열심히 노동자를 그립니다. 그러나 그 자신이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어느 날, 몸이 아파 병원을 찾아간 그에게 의사가 말합니다.
“보아하니 당신은 철공 노동자군”


이 말을 들은 한국인 화가는 기뻤을까요, 화가 났을까요?


전 상당히 높은 확률로,
화가님께서 기분이 상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짐작해봅니다.

화가라면 관(官)노비였던 조선시대가 아닌지라, 

현대 한국에서 예술을 하려면(미대를 들어가려면) 아버지-할아버지가 최소한 중상층에 속해야 하고, 

미대 졸업 뒤에도 경제적으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화가 생활을 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런 한국 화가님한테 “너, 철공 노동자지?”라고 말하면, 십중팔구 기분이 상할 것 같습니다.

아무리 '노동자 화가'라도, 한국에서는 노동자(낮은 신분)처럼 보이기보다는 화가(높은 신분)처럼 보이는 걸 더 선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똑같은 상황이 빈센트 반 고흐에게 일어납니다.

1885년 12월 의사를 찾아간 그에게 의사는 “당신 직업은 틀림없이 철공 노동자군”이라고 말했고,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정말 기뻤지. 나는 그렇게 변하고 싶어 노력했거든. 더 젊었을 때, 나는 지적인 면에서 너무 긴장한 사람으로 보였으나, 지금은 뱃사공이나 철공 노동자처럼 보인다는 거야”라고 씁니다. (박홍규 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지‘ 378쪽)





지난 회에서 말했듯 고흐의 아버지는 시골 교회의 목사로,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집에는 하인에 요리사까지 두고 살 정도였고,

 

고흐는 외가 쪽의 빽에 힘입어 당대 최고 수준의 국제적 화랑에 입사해, 

런던과 파리에서 활동하던 그림 중개인이었잖아요?


넥타이 매고 살던 고흐가, "넌 철공 노동자가 분명하다"는 말에 가슴 깊이 기뻐했다는 사실.... 

우리랑 많이 다른 사람인 거는 확실하지요? 



[박홍규 교수 따라 빈센트 만나기 2편: 노동자화가 고흐, 레미제라블에게 집-옷 다 주고 알몸으로 울다] 동영상에서 말했듯,


빈센트 반 고흐는 우리가 쉽사리 이해하기 힘든 사람입니다.



그는, 뭔가 한 가지에 꽂히면 미친 듯이 그것에 열중하는,
자기 한 몸 안 사리고 해대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노동자 그림을 열심히 그린 이유는 그들에 공감했기 때문이며, 

외모마저 그들과 같아지려 했기에 

“너, 노동자이지?” 하는 말에 기뻐했을 것입니다.

당시 노동자의 사회적 위치는 지금과는 달리 아주 낮았다고 합니다. 


당시만 해도, 화가가 노동자의 그림을 그리는 것은 '반칙(거의 미친 짓)'이었고, 

그림이란 잘사는 시민 계급 이상을 그리는 게 원칙이었다니까요. 


그림이란, 그 이전에는 귀족들의 신세를 지면서 그리는 것이었고, 

산업혁명 이후에는 잘사는 부르주아를 그리면서 돈을 받는 형태였으니까, 

돈 한 푼 안 나오는 '노동자 그림'을 그리는 것은 웃음거리가 될 수밖에 없지요. 



여기서, 자신의 외모 평가에 대해 기뻐했다는 고흐와, 

외모 치장에 살인적인 노력을 하는 한국의 보통 사람을 한번 비교해보는 것도 의미있을 듯 합니다. 


고흐는 자기 내면의 정열, 즉 '노동자를 사랑-존경하고, 그들의 그림을 그린다'는 자신의 내면이 밖으로 내비치면서 자신의 외모마저 "노동자 같다"는 평가를 받아, 

자신의 안과 밖이 일치한다는 것에 기쁨과 보람을 느낍니다. 


우리는 그런가요?

우리는 실제의 나보다 더 지위가 높고, 돈도 많은 사람으로 남들이 봐주기를 열망하고 있지는 않나요? 


가난하면서도 차는 값비싼 독일 차를 타는 사람이 꽤 되는(미국에서는 보기 힘든 현상) 나라 아닌가요? 


한국의 외모지상주의가 지독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한국 땅에 뿌리를 깊이 내린 유교입니다.


유교의 교훈 중에 신 > 언 > 서 >판(身言書判)이란 게 있습니다.

사람을 판단할 때 

가장 먼저 몸을 보고, 그 다음에 말하는 걸 보고, 글솜씨를 보고, 마지막으로 판단력을 본다는 겁니다. 

사람 판단의 순서인 게지요. 


몸부터 봐야 하는 문화니까, 이력서에서도 가장 눈에 잘 띄는 자리에 사진이 떡하니 들어가는 게지요. 


반면, 이런 한국의 이력서에 대해 똑똑한 미국 청년 타일러는 "깜짝 놀랐다"고 말했습니다. 

"아니, 도대채 왜, 이력서에 사진을 붙이느냐?"는 게 그의 말입입니다. 



이력서는 그 사람의 '몸'(즉 얼굴)을 보기 위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일할 자격을 갖췄는지, 자격-경력을 보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의 이력서는 지원자의 경력-자격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킵니다. 


물론 미국 이력서 양식에도 사진을 붙이는 양식이 있기는 하지만, 외모가 중요한 분야에서나 그런 이력서가 사용될지는 모르지만, 

제가 미국에서 이력서를 써 본 경력으로는, 

이력서란 기본적으로 '텍스트 온리(text only)'이지, 

이력서에 붙일 사진을 찍어본 기억이 전혀 없습니다. 


아래는 미국 이력서의 한 샘플입니다. 




한국 이력서에서 사진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이유가 바로 '신언서판' 때문입니다. 

몸과 옷이 반듯하면, 그 사람의 마음마저 반듯할 것이라 생각하는 게 바로 유교의 신언서판 문화걸랑요. 


헌데, 요런 한국의 유교 문화는 사기꾼들에게는 딱 좋지요? 


예전에 공자 시대에는 사람의 외모를 본다는 게 직접 만나서 보는 것 말고는 다른 수단이 없기 때문에 직접 만나서 그 사람의 행동거지를 보면서 판단한다는 게 의미가 있었겠지요, 


하지만 지금은 뽀샵이 가능하잖아요? 

글고, 패션이 워낙 발달해서, 평소 날나리 복장을 하고 다니던 여성도, 오피스 레이디처럼 복장을 갖추고 면접을 나가 좋은 인상을 준 뒤에, 출근날에는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나가, 사무실을 깜짝 놀라게 해줄 수 있잖아요? 요 '미니 스커트 사건'은 제가 실제로 겪어본 일화이기도 합니다만.....ㅎ 


결과적으로, 공자 시대(기원 전 500년쯤)의 신언서판이 아직도 판치는 한국은 '외모로 사기 치기에 최적인 나라'입니다. 


돈에 환장한 이명박이, 저렴한 차림으로 국밥을 드시는 비주얼 정치를 하면, 그 외모를 바라보는 한국인들의 가슴은 곰탕 국물이라도 들어간 듯 뜨끈해지고, 



무능-무위의 대통령이었던 박근혜도 '패션 정치'를 하면, 이른바 보수지들의 대대적인 보도를 통해 국민의 가슴이 뜨뜻해지는 그런 나라입니다. 



평소 저렴한 음식은 쳐다보지도 않는 부자 정치인들이 시장통에 가서 오뎅-떡볶이를 드시면, "우리랑 같은 사람이었네"라면서 감격하는 국민이기도 하고ㅎㅎㅎㅎ  


 


한국에서 외모가 얼마나 치명적인지는, 

추녀의 사랑 이야기를 그려 충격을 줬던 소설 

박민규 작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의 한 구절, 즉 


"보여지기 위해 세상을 사는 거라구."(217쪽)


에서도 극적으로 드러납니다. 



한국인들, 자기 만족을 위해 사나요? 

아니면 남보기 좋으라고 사나요? 

남(가족 포함) 보기 좋으라고 사느라고 이렇게 힘든 거 아녀요?

  

서양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 살기 때문에(개인주의자) 상대적으로 편하게 살고, 

남 보기 좋으라고 사는 한국인은(외모지상주의, 처세주의, '그럴듯해야'주의) 상대적으로 힘들어 죽겠는 거 아냐요?

 

그런 면에서 고흐는,
외모에 죽고 사는 한국인과는 정반대 극에 있는 사람
입니다.

고흐를 좋아라 하시는 우리의 경애하는 지도자 선생님 박홍규 교수님도, 

고흐처럼 '외모 완존 무시주의‘로 삽니다.   


아래 동영상들을 보시면, 그의 '몰상식한' 외모 생활을 알 수 있습니다.ㅎ


[박홍규 교수 따라 자본주의 벗어나기 6-1편 옷 맵시] 외모지상주의 한국에서 외모관심 1도 없음



[박홍규 교수 따라 자본주의 벗어나기 6-2편: “옷” 보느라 박근혜에 속은 한국인] 


우리의 경애하는 지도자 박홍규 교수님께서는 유고의 외모지상주의에 대해 이렇게 비판하시었습니다.


유교가 얼굴과 옷 등을 중시한 점에 대해서는 유감이 있다 (중략) 

얼굴과 옷이 보기 좋은 양반이 지배하는 세상이 전통사회의 이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독서독인‘ 258쪽)




지독한 보수주의자였던 공자에게, 

 ‘人 = 귀족사람, 民 = 상놈사람’의 구분은 중요했을 게고, 


그런 구분을 위해서도 복식의 차별은 중요했을 것입니다. 


人 = 귀족사람이었기에, 

人과  사이의 예절-존중을 가르치는 인(仁)도 원래는, 즉 공자가 생각할 때는 

귀족과 귀족 사이에 적용되는 거지, 

상놈들이 어떻게 사는지에 대해서 공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는 거, 다들 아시죠? 




외모와 내면이 일치하면, 

설사 그 외모가 사회적으로 멸시당하는 노동자의 그것일지라도 기뻐한 고흐


반대로, 자신의 내면과는 달리 '그럴듯해 보이는' 외모에 집착하는 한국인 사이의 거리는 참으로 먼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국 문화에서는 스티브 잡스 같은 진정한 개혁가가 나오기도 힘든 측면이 있지만(중뿔나면 정 맞는 사회이기에),

고흐처럼 진솔하게 자신의 내면을 쏟아내는 화가가 나오기도 힘든 건 아닐까요? 



고흐의 그림에 좋아라 한다면, 

고흐에 완전히 빠진 박홍규 교수가 그렇듯, 

외모지상주의에 대해 한번 처절하게 저항해 보는 건 어떤가요? 



지난 편에 이어 ’노동자 화가‘ 빈센트 얘기를 두 번 했으니,

다음 회차에는 원래 약속대로,
고흐가 살던 시대의 또 다른 노동자 그룹이었던
농민을 그린 ’농민 화가‘ 고흐의 면모를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당연히 포커스는,
고흐가 평생 그린
’씨 뿌리는 사람‘, 그리고 ’밀밭‘ 그림들에 맞춰지겠지요?


그럼 다음 만날 때까지 안녕~~~~~^^



<따박따박 읽어내는 북손탐의 재밌는 동영상들>




고흐가 미쳤다고? 이렇게 맨정신인데? 

고흐는 열정만의 화가라고? 책을 이렇게나 많이 읽은 지식인인데? 

우리가 잘못 배운 빈센트의 진면모!




메시와 호날두 중에 누가 좋냐고? 

난 단연코 호날두!! 

왜냐고? 인간적이잖아!! 

동양인 비하하느라고 눈찢는 메시가 좋으니? 

호날두는 저런 천박한 짓 말라고 메시 같은 것들한테 아래위로 찢어주잖아.   


"아래위로 눈 찢어진 야만인들아!"라면서




돈에 구애받지 않고 사는 법이 있다고라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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