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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Sjf8XXAYeik

인기 드라마 ‘녹두꽃’을 통해

21세기 한국에 꽃피운 ‘토착왜구’의 뿌리를 훑어보는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동학농민운동 단계에서 이미 앞으로 한반도에서 토착왜구 역할을 할 조상님들의 면면들이 다 드러나거들랑요.

 

[‘녹두꽃’ 보면 토착왜구 보인다고?] 시리즈의 첫 주인공은,

 

잘 생기고, 옷잘입는 미남에,

가문까지 으르짱짱한 때깔최고 '황 진사' 황석주입니다.

(한국인은 외모에 유독 약해요. 그런 외모지상주의도 사실은 토착왜구와 관련이 큰데, 그 얘기는 나중에 차차 하지요)

 

잘 생기고 옷맵시도 잘 빠진 황 진사의 모습을, 옆의 동학패들과 한 번 비교해 보지요.

양반의 복식은 요즘식으로 말하자면 '디자이너 패션'으로서, 각 디자인에는 절개-지조 등의 '의미'가 담겨 있고, 도포자락 등은 몸의 움직임을 방해한다. 반면 일을 해야 하는 상것들의 옷은 그저 몸을 움직이기 좋은 게 첫째 주안점이다.

상놈들의 옷과, 양반의 잘 빠진 옷의 차이는,

바로 일을 할 수 있냐, 없냐와 관계있지요.

 

조선 사회에서 양반은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게 기본이고(無노동),

오로지 지배하고 착취하는 게 일이었지요.

 

조선 양반은 국방의 의무도 지지 않았어요.

반대로, 서양과 일본 귀족의 가장 큰 의무는 ‘국방’이라서,

전쟁이 나면 귀족이 장교가 되어 제일 앞에 나섰지요.

아더 왕을 그린 그림. 서양 전통에서 왕-귀족은 전쟁의 주역이었다.

귀족이 국방 의무의 제일 앞줄에 서는 것은 고려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지요.

 

그러나 주자학의 세상 만사를 모두 틀어쥔(마치 요즘 회교 국가들의 이슬람 종교처럼) 조선에서는 국방 의무가 양반들에게서 면제되지요.

 

쉽게 말해 다른 거의 모든 나라에서 귀족의 기본은

‘지배하되 지켜준다’였지만, 조선에서만은

‘지배하되 안 지켜준다’라는

인간 역사상 유례가 드문 귀족층이 생겨난 게지요.

 

이는 “괴롭히지만 지켜도 준다”는 상가의 깡패들만도 못한 행태였지요.

드라마에서 고려 충렬왕으로 분장한 탤런트 정보석. 왕이지만 복식은 장군복이지요? '귀족=장군'이라는 공식은 고려 때까지만 해도 유효했지만, 주자학을 세상의 지배원리로 숭상한 조선에 와서는 이런 공식이 깨져버리지요.

어쨌든 이런 양반 중에서도

황 진사는 그래도 정의감이 ‘일부’ 있어서,

전봉준의 동학 거사에 참여합니다.

 

단, 황 진사의 참여는 어디까지나 ‘고부 성’ 내의 탐관오리를 몰아내는 정도에서 그치자는 것이었지요.

 

고부성을 벗어나 관군의 무기고를 털고 전주성을 함락시킨 뒤 한양까지 진격한다는

전봉준의 ‘실행’에 대해

 

황 진사는 “한 번 더 그러면 내가 너를 벨 것이야”라고 엄포를 놓습니다.

개혁에 머리로는 동의하지만,

그 개혁이 자신의 몸에까지 미칠 정도로 확대되면,

바로 본성을 드러내 ‘반동’의 양상을 보이는

귀족-양반의 전형적 행태입니다.

 

황 진사는 전봉준과 대립함은 물론,

동학 거사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옥에 갇힙니다.

 

“옥에서 빼줄테니, 1급 양반 가문인 당신의 여동생 명심을 내 아들 백이현(윤시윤 분)과 결혼시켜라”는

중인 출신 백 이방의 제안에 대해

 

황 진사는 처음엔 불같이 화를 내지만,

결국에는 제 한 몸 살자고, 혼인을 승낙하고는 옥에서 빠져나옵니다.

이방 백가는, 자신의 아들 이현을 '탈옥을 조건으로 내걸고' 명문가 황씨네에 장가보내려 하지만, 황 진사는 처음엔 불같이 화를 내다가 결국 받아들인다.

더구나, 백이현은 황 진사의 제자이기도 하지요.

 

일단 이렇게 혼인을 약속하기는 했지만,

황 진사는 이 결혼이 싫습니다.

고결한 양반 가문의 피가,

더러운 중인 가문의 피와 섞이는 걸 참을 수 없는 게지요.

 

그래서 제자이자 매제(여동생의 남편)가 될 백이현이,

출옥 인사차 찾아와도

“혼사를 앞두고 신랑 될 사람이 신부 집을 방문하는 건 법도에 어긋난다”며 오지 말라 하고,

또 백이강의 어머니 유월이를 선운사로 피난시키느라 죽을 고비를 넘긴 백이현이 ‘스승님’을 뵙기 위해 방문해도,

“용케 선운사에서 살아나왔구나”라면서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속내를 내비칩니다.

급기야는,

원래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유학생 자격으로, 징집 대상에서 제외돼 있는 이현을

“징집시키라”고 이방에게 지시하기도 합니다.

 

제 한 몸을 구하느라고 ‘더러운 피’와의 혼인을 약속하기는 했지만,

실행하기는 싫기에

백이현이 죽기를 바라거나,

한 걸음 더 나아가 군대에 나가 죽도록 작전을 펴는 것이지요.

제 한 몸의 안락함만을 주로 추구하고,

더러운 피(개-돼지 국민들)의 죽음 정도야 일로도 치지 않는 이러한 조선 양반들의 태도는,

그간 별로 알려져 있지 않았지요.

 

왜냐면, 근엄한 얼굴표정와 멋진 복식 뒤에 숨어 있으면,

잘 모르는 국민(백성)들이

"아, 나라 걱정을 하시는구나!" 하고 지레짐작을 해버렸거든요.

그러나 극히 드물지만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 사람도 있어요.

바로 연안 이씨 양반 가문의 후손으로서,

일제강점기에 고등문관 출신 조선인 관리로서 요직을 거쳤고,

 

해방 뒤 친일파 전력에도 불구하고 (사실 친일파라고 해방 뒤 손해본 사람 아무도 없지요?)

홍익대 총장까지 지낸 이항녕 박사의 솔직한 술회입니다.

이항녕

김동춘 성공회대학 교수는 저서 ‘대한민국은 왜?’에서 이항녕 박사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일제강점기 고등문관 출신 관리들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과거를 참회한 홍익대 총장 이항녕 (중략) “내가 소위 사회지도층에 속한다는 것도 만화요 웃기는 일입니다. 나의 최대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하루라도 더 오래 안일한 생활을 지속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더러운 욕망은 하필 오늘의 나의 철학이 아니라, 일제시대부터 내가 만고불멸의 철칙으로 알고 지켜온 나의 확신입니다.” (86쪽)

 

이런 조선 양반이기에,

일제강점기가 시작된 뒤 극히 일부분('위정척사'를 주장하며 의병을 일으킨 극히 일부분)을 제외하고는

바로 토착왜구 같은 역할을 하게 됩니다.

 

어차피 조선 양반의 임무라는 게

1. 나랏일을 하면서 (정치)

2. 가문의 세력을 키우는 것 (가문-재산)

두 가지였는데,

 

이 중 나랏일이 조선총독부 수중으로 넘어가자

양반 가문에 남은 것은 2번, 즉 가문의 재산 지키기밖에 없게 됐지요.

조선총독부 건물. 일제는 경성 관광 기념 우편엽서 등을 만들어 조선에서 자신들이 이뤄낸 업적을 자랑했다.

만약 이 가문의 재산을 일제가 빼앗으려 나섰다면 큰 사단이 났겠지만,

영리한 일제가 그럴 리가 없지요.

 

일본인들이 알아보니,

조선 양반들은 가문과 가족재산을 지켜주면

과거에 중국 섬기듯 일본 섬기기를 할 수 있다는 걸 간파했고, 그대로 했지요.

 

정치를 못하게 하는 대신(총독부가 지배하니),

가문과 재산을 지키게 해주자 거의 대부분의 조선 양반들(위정척사파를 제외하곤)은 바로 일제에 충성합니다.

일본제국주의가 조성한 서울의 명동(혼마찌) 거리. 조선 양반과 졸부들을 이런 신문명 즐기기에 적극 나섰다.

또한 이 위정척사파 세력 역시 기본적으로 유교 질서를 지키는 게 목적이므로,

동학처럼 기존의 신분질서를 거부하는 세력이 나타나면 바로

신경질적으로 반응합니다.

 

'녹두꽃'의 황 진사에게서 알 수 있듯

양반들은 동학 세력을 바로 “동비(東匪: 동학 도적떼)”라고 부르며 증오했고,

 

조선 조정은 청나라에 “동비들을 죽여달라”고 요청함으로써,

청나라 군대가 조선으로 들어오고,

그러자 10년 전에 맺어둔 톈진조약에 따라 일본군 역시 조선에 출병하지요.

 

그리고 결국 동학군은 일본군에게 전멸 당하지요.

내부의 개혁 요구가 외세의 의해 진압되며,

그걸 원한 게 바로 양반들입니다.

 

요즘으로 비유하자면,

군사독재정권에 저항하는 시민들을 죽여달라고 한국 정부가

미군에 부탁하고,

 

미군이 진입하자 일본군까지 진입하는 게

바로 동학란 전후의 사정입니다. 참으로 무섭고도 우습지요?

동학군을 진압하기 위해 조선에 진주한 청군(왼쪽)과 일본군
동학군 진압에 투입된 일본 군의 행진. 이들이 메고 있는 '무라타 22년식' 소총(바로 윤이현이 구입했던)은 동학군의 화승총에 비해 성능이 워낙 뛰어나, 이 총 한 자루만 있으면 동학군 250~300명을 당해낼 수 있었다니 참으로 '인간 사냥'이 벌어진 셈입니다.

양반들이 민중-농민의 고통에 대해서는 완존히 무지한 채,

일본 지배 아래서 자신들의 재미(일본이 가져온 문명의 이기)만 찾아 즐기는 모습은 이광수 등의 일제강점기 소설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토착왜구의 의미가 ‘이 땅에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일본놈처럼 조선 사람들의 껍질을 벗겨 먹고 사는 사람들’이란 의미라면,

비교적 양질인 황 진사까지 포함해

조선 양반 거의 전체가 토착왜구가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발언을 해도 역시 현대의 양반들이 다스리는 법원은 또한 '파면 처분은 부당했다'는 판결을 내리지요ㅋㅋ

양반들의 이런 행태는 '21세기 한국 양반'에서도 마찬가지란 거,

매일매일 확인할 수 있지요?

 

"국방의 의무는 신성하지만, 그 신성함은 개-돼지 너들이나 가지세요"라면서

자기들과 그 자손들은 뭐니뭐니 이유도 잘 달아서 군대 근처에는 절대적으로 안 가려하는 어느 당 사람들처럼?ㅋㅋ

개-돼지들을 신성하게 만들겠다는, 참으로 대단한 정성이자 겸양이지요?ㅎㅎ

 

[‘녹두꽃’ 보면 토착왜구 보인다] 시리즈의 첫 순서는

황 진사에 포커스를 맞춰 조선 양반의 ‘토착왜구 됨’을 알아봤습니다.

스승 황 진사가 입대를 통해 자신을 죽이려 했음을 알고 충격에 빠진 백이현을 윤시윤이 열연하고 있다.

다음 회에선,

양반을 보는 눈이 남한과 북한에서 왜 천양지차로 다른지

한번 점검해보겠습니다.

 

그럼 안녕~~~~~

 

<북손탐의 영양가 듬뿍 '책읽는' 동영상>

https://youtu.be/eyZeqS0O5tE

https://youtu.be/M0OxTQmT4IU

https://youtu.be/A37gd0YRi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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