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https://youtu.be/Od1bpLJODiA

 

안익태 애국가의 곡조가 너무 슬프고, 기독교적이며, 망해가는 대한제국의 황실을 그리워하는지에 대해선 여러 비판이 있었습니다. ‘안익태 케이스’에 나오는 문장들을 보지요.

 

1943년 태평양전쟁 중 일본에서 만난 문인들. 왼쪽부터 윤석중, 최남선, 이광수.

아동문학가 윤석중은 그래서 국호, 국기, 국가, 국화, 연호 등 국가 상징의 전면적 재검토를 요구하고 나선다. 그중 애국가 부문을 보자.

“‘로켓트’ 시대에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은 너무나 후락하다.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 역시 시대에 뒤떨어졌다. .. ‘보우’니 ‘공활’이니 하는 어려운 낱말이 내달아서는 딱하다.(174-5쪽)

 

1964년 2월 11일자 경향신문 지면.

그래서 1964년에 들어 경향신문은 ‘어떻게 고쳐야 하나’라는 시리즈 기획을 통해 국기-국가의 변경 가능성을 타진했지요.

경향신문 1964년 2월 11일자를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지금 불려지고 있는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씨는 그것을 ‘하느님이 주신 노래’라고 말한다.

 

안익태 애국가의 기독교적 백그라운드가 확실히 드러나지요?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 절대적으로 받들어 모셔야 하며, 절대로 손을 못 댄다는 소리로도 들립니다.ㅋ

 

계속 경향신문 기사를 보지요.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이란 구절은 비판이 대단했다. 사학가 홍이섭 교수(연세대)는 ‘극한적인 표현’이라고 그것에 질색을 했다.

작곡가 나운영 씨는 지금의 애국가는 서양식 찬송가라고 말하면서 새로 제정할 국가의 곡조는 7·5조를 피하자고 주장했다. ‘한국적인 곡조’가 좋다는 것이었다. 박용구 씨(음악 평론가)는 “헌법 제1장 1조의 ‘민주 공화국’, 제2조의 ‘왕권은 국민에게’, 제5조의 ‘자유·평등·창의’가 가사에 포함되도록 하자”는 주장을 내세웠다.

 

위 경향신문 지면의 확대판

 

위 경향신문 지면의 확대판

1970년대 들어서도 애국가의 가사에 대한 시비는 계속됩니다.

동아일보 1971년 8월 16일자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립니다.

당시 어문연구회가 제안한 내용으로,

 

애국가의 4절은 본래 황실을 찬양한 것으로 다소 고치기는 했으나 후렴과 중복되고 있다”

는 지적입니다.

 

동아일보 1971년 8월 16일자의 기사.

애국가의 4절은 현재는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지만,

윤치호의 원래 시(1906년 윤치호의 찬미 수록곡에 담긴 가사. 1907년 윤치호 作 '찬송가집'에도 담겨 있다는)에서는

 

‘이 긔상과 이 마음으로 님군을 섬기며 /

괴로우나 질거우나 나라사랑하세’

 

였다고 합니다. 

 

‘안익태 애국가’의 곡조는 전형적인 찬송가 곡조이며,

그 증거로서 이해영 교수는 책에서

애국가 선율이 그대로 삽입된 ‘한국 환상곡’을 분석합니다.

 

그 가장 두드러진 예가 ‘한국 환상곡’의 대미에 해당되는 애국가 합창 부분의 마지막 코드를 들 수 있다. 관현악과 함께 합창단이 ‘만세’ 가사를 노래하는데 여기서 안익태는 ‘IV도 → 1도’라는 ‘변격 종지’를 사용했다. 이 변격 종지는 일명 ‘아멘 종지’라고도 하는데 찬송가의 ‘아멘’도 ‘IV도 → 1도’ 화음으로 이루어진다. 실제 안익태는 ‘한국 환상곡’ 1953년판에서 여기에 ‘만-세’ 대신 ‘아-멘’이라는 가사를 넣었다가, 1954년판에서 이를 다시 ‘만-세’로 바꾼다. 여기에 대해서는 진정임(1998), P159를 참조

 

현재의 ‘한국 환상곡’은 마지막 합창이 ‘화려강산 만세’로 끝나지만, 안익태 선생은 한때 ‘화려강산 아멘’으로 끝나도록 하기도 했다는 말입니다. 한번 해당 부분을 들어볼까요?

 

https://youtu.be/N79CdgDltiA

이 동영상의 13분 50초 이후의 '화려강산 만세' 부분이 한때는 '화려강산 아~멘'이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별나기는 하지만 전두환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도 ‘민족주의’를 표방한 정권 차원의 새 국가 제정 노력이 있었다고 합니다.

쿠데타 정권일수록 없는 정통성을 만들기 위해선 벼라별 일을 다해야 하므로, 새 국가 제정도 그런 노력의 하나였겠지요ㅎㅎ.

 

동아일보 1983년 4월 29일자 지면.

‘안익태 케이스’ 180~181쪽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전두환 시절 안호상을 위원장으로 유진오, 백낙준, 이희승을 고문으로 하는 ‘국가 제정 위원회’는 이전의 개인적 의견 피력을 넘는 제법 모양을 갖춘 형태로 국가 제정의 필요성을 주창하고 나섰다. 먼저 이 단체는 애국가 가사가 “고종 때 국운이 완전히 기울어져 있을 무렵 만들어져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의타적”이라 주장한다. (중략) ‘하느님이 보우하사’라고 하여 의타적이고

(중략)

하지만 여기에 대한 반응, 특히 기독교계의 반응은 즉각적이고 날카로웠다. 한국기독교지도자협의회라는 단체는 개신교계 지도자 10여 명이 배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열고 “애국가는 지난 날 일제의 탄압과 공산주의자들과의 투쟁 속에서 우리 얼을 지키며 불러온 애환이 담겨있는 민족의 국가”라고 지적하고 “특히 전 국민의 화합과 단결이 요망되는 이때에 국가 제정이란 불필요한 문제를 야기케 하는 것은 반국가적 행위로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한다.”고 주장했다. 그 양상이 마치 안호상 류(流) 국수주의와 기독교 근본주의와의 충돌이라 해도 될 만했다.

 

경향신문 1983년 5월 3일자

이상의 논의를 토대로 알 수 있는 것은,

 

애국가의 가사(일제강점기 말에 친일로 돌아선 윤치호 작사)는

대한제국적, 왕조를 그리워하는, 왕에 대해 충성을 맹세하는, 기독교적임을 알 수 있고,

 

안익태 애국가의 곡조는

대단히 기독교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안익태 케이스’ 1]편에서는, 안익태의 친일-친나치 혐의를,

 

[‘안익태 케이스’ 2] 편에서는, 대한민국의 주류를 장악한 서북계(기독교-반공)가 '좌익 성향 0%'의 안익태 애국가를 애호했으며,

 

이번 [‘안익태 케이스’ 3]편에서는, 찬송가 곡조와 비슷한 점이 많아 한국 기독교계가 특히 사랑하는 안익태 애국가라는 점을 알아봤습니다.

 

그럼 다음, 마지막 4편에서는 드러내놓고 친일을 해 벌을 받았던 최남선-이광수와 달리,

‘드러나지 않은 친일파로서 전혀 벌을 받지 않고 상만 받았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안익태가 어떻게 다른지를 한번 비교해 보겠습니다. 그럼~~

 

<따박따박 읽어내는 북손탐의 동영상 추천>

https://youtu.be/eyZeqS0O5tE

https://youtu.be/M0OxTQmT4IU

https://youtu.be/A37gd0YRiks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