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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사히신문의 전직 기자로서 최근 한국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이나가키 에미코의 두 책 ‘퇴사하겠습니다’와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의 주요 내용을 소개합니다.


읽기는 쉽지만 여운은 긴, 이런 책 좋아!


얇은 책인지라 순식간에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용은 깊습니다. 수많은 기사를 써온 기자 출신으로서, ‘짧은 글 안에 엑기스를 담는’ 기술에 통달한 저자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이런 책 좋아요. 읽기 쉽지만 느끼는 바가 크고, 여운이 오래 갑니다. 저도 이 책을 읽은 뒤 책 속의 일화와 저자의 말들이 머릿속에서 일주일 이상 계속 오락가락합니다. 이렇게 여윤이 남는 책이 좋은 책이죠? 힘들게 읽었지만 여운이 안 남는 책이 가장 신경질나고…ㅎ


이 책 둘에는 여러 내용이 있지만, 저는 키워드를 ‘홀로’로 뽑습니다. 요즘 혼술, 혼밥, 나홀로여행이 유행이지만, 혼자서 뭔가를 한다는 것,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나가키 에미코에게서 읽을 수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혼술-혼밥-나홀로여행을 할 줄 알아야, 함께술-함께밥-함께여행도 가능하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며 체험입니다.


그간 한국의 기성세대는, 함께술-함께밥-함께여행만 할 줄 알았지, 혼술-혼밥-나홀로여행은 해본 적도 없고, 또 그런 걸 하면 큰일나는 줄 아는 경우가 많았죠.


이나가키 식으로 말하자면, ‘혼술-혼밥-나홀로여행을 할 줄 안 뒤에야 함께술-함께밥-함께여행이 가능하다’인데, 한국인들은 함께술-함께밥-함께여행만이 정상인 줄 알다가 요즘에야 겨우 혼술-혼밥-나홀로여행이라는 게 가능한 줄 알아가니, 완전히 순서가 뒤바뀐 것이지요.


“모임은 모임인데, 회원은 나 혼자야”


‘혼자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하는 저자의 일화를 한 번 들어보죠. ‘퇴사하겠습니다’의 93쪽에 나오는 일화입니다. 아사히신문을 퇴사하기 전 상황이지요.


"나, ‘아사히신문을 바꾸는 모임’이라는 걸 만들었어.” 언제부턴지, 그런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회원은 나 한 사람입니다. 술자리에서 그런 말을 하면, 동료들과 후배들이 “나도 끼워주세요”라는 소리를 종종 합니다만, 딱 잘라 거절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중략) 혼자서 판단하고, 혼자서 책임을 지며, 혼자서 움직입니다. 작은 힘입니다만, 자기 혼자 결단하기만 하면,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약하지만 강합니다.


우습지요. 모임을 만들었다고 선언하면서 회원은 자기 혼자고, 다른 회원은 안 받는답니다. 무슨 그런 모임이 다 있어?ㅋ


여러 사람의 모임이 아니라 자기 혼자의 마음을 모으는 모임인 모양입니다ㅎ~


하지만 비장하지요. 왜 혼자냐? 혼자면 끝까지 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흔히 우리는 뭔가 일을 도모할 때 혼자서 하기는 겁나서 사람들을 모읍니다. 여럿이 으쌰으쌰하면 신나고 쉬워지잖아요. 헌데, 그 여러 명이 종종, 아니 반드시 항상 문제가 됩니다. 여러 명이 안 모여서 일이 추진 안 될 때도 있고, 또 여러 명이 모여도 사후적으로 일이 진행되면서 의견차이 또는 감정경쟁(서로 주도권을 잡겠다는)이 벌어지면서 일은 틀어지고, 가슴에 상처만 남는 일이 왕왕 일어나지요.


이럴 때 “나 한 사람은, 끝까지 간다. 다른 누가 뭐라 해도”라고 결심하고 일을 밀어붙이면, 무조건 일이 스타트되며, 감정싸움 등으로 일이 방향을 잃을 일도 없습니다.


이나가키는 무소 뿔처럼 혼자 전진해 이뤄낸 경험을 책의 곳곳에서 털어놓습니다. 아니, 이 두 책 모두가 그녀가 혼자서 무소 뿔처럼 전진해 이뤄낸, 그리고 그 이뤄낸 일들에 대해 구그녀 스스로가 ‘아니, 내가 정말 이런 일을 이뤄냈단 말인가?’라고 놀란 얘기를 전하기 위한 책들입니다.


“돈-사람 없어도 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아사히신문 사옥에서 구내식당이 폐쇄되면서 식당의 아저씨-아주머니 종사자들에게 ‘감사 책자’를 만들어드리는 일을 이나가키가 시작해 이뤄냅니다. 책을 만든다고 하면 돈과 인력 걱정부터 하지만 이나가키는 무조건 시작하고, 그녀의 취지에 공감한 아사히신문의 동료 기자들이 십시일반 도와주면서 감사 책자는 만들어집니다.


이 일에 대한 그녀의 소감입니다. “예산이나 인원이 없이도 할 수 있는 일이 무언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중략)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전하고 싶은 마음만 있다면, 그런 쩨쩨한 동기와는 상관없이 사람들이 움직여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퇴사하겠습니다’ 90쪽)


나 홀로가 먼저 움직이고, 그 뜻이 정당하고 진정이라면 움직여주는 사람이 있다는 체험담입니다. 여기서도 일의 순서는, 도와주는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나홀로의 진정한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겠지요.


흔히 우리는 반대로 생각하지 않나요? 나는 정말 하고 싶은데, 다른 사람들이 도와주지 않으니(아니, ‘도와주지 않을 것 같으니’가 팩트겠지요) 할 수가 없어 미치겠다…고 핑계거리를 만들지 않나요?ㅎ


‘돼지보다도 힘들다’는 큰 신문사의 기자들을 상대로!ㅋ


두 번째 일화입니다. 저도 大신문사에서 일해본지라, 大신문사의 기자들이란 사람들이 얼마나 자존심 세고, 골치아프게 만드는 사람인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돼지 세 마리 끌고 부산에서 서울 가기보다 세 기자 모시고 부산에서 서울 가는 게 훨씬 어렵다’는 말까지 나왔겠어요?ㅎㅎ



그런 아사히신문에서 매달 우수 기사에 상을 줬던 모양입니다. 일본의 양대 대도시랄 수 있는 오사카 본사에서 데스크 역할을 하던 이나가키 기자는 한심한 지방도시 데스크로 좌천을 당합니다. 잘 나가던 본사 기자를 지방으로 발령내는 건, “그만 둬라”는 의미이기도 하고, 실제로 이런 과정에서 많이 그만두지요.


아사히 신문의 깃발. 회사의 이름 그대로 '아침 햇살'을 표현했다지만, 한국인에겐 눈에 거슬리는 욱일기 형상입니다. 하짐나 아사히신문은 일본 매체 중 그래도 진보 축에 들어가므로 용서할 만 합니다ㅎ


헌데, 이나가키는 시골 데스크로 자리를 잡아갑니다. 그 과정에서 겪는 이야기는 책에서 읽어들 보시고…. 그녀의 일화에서 정말 놀라웠던 것은, 매달 주는 좋은 기사 상을 도쿄-오사카 본사 기자들이 독식하는 걸 보고, “이건 아니다” 싶어서 그녀가 벌인 행동입니다.


매주 사내 메일로 장황한 리포트를 오사카 본사의 모든 편집국원들에게 보내는 활동을 개시했습니다. (중략) 좋은 기사에 주는 매월의 상을, 점차 지역판 기사들이 석권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퇴사하겠습니다’ 88~89쪽)


지방으로 쫓겨간 기자가 모든 편집국 기자에게 게찌스럽게 이메일을 매주 보내 “우리 지역판에 이리 좋은 기사가 있고, 또다른 저쪽 지방판에 저리 좋은 기사가 있는데 왜 좋은 기사 상은 본사 기지만 독식하느냐?”고 시비를 붙는 모습은, 큰 신문사 내부 분위기를 잘 아는 제 입장에서는, 정말 머리카락 끝이 쫑긋 설 정도로 짜릿하고 오금이 저리는 광경입니다. 이런 이메일을 받은 본사 기자들, 특히 데스크급의 임원들의 심정은 어땠을지 생각만 해도 심장이 쫄깃해집니다ㅎㅎ.


이름과 이메일 밖에 없는 이나가키 에미코의 명함. 한국에선 아주 쎈 사람들이 이렇게 명함 만들죠?ㅋㅋ 직함 같은 거 일체 안 쓰고 "궁금하면 네가 찾아라"는 식으로. 아주 쎈 사람 아니라도 이런 명함 만들 수 있다능ㅎㅎ


그런데 이런 ‘나홀로 이메일 작전’을 시작한 뒤 지방판 기사들이 상을 독식하기 시작했다니, 정말로 이나가키 식 나홀로 작전의 위력은 대단합니다. 앞에서와 똑같습니다. 나홀로 시작하면 끝까지 할 수 있고, 누구도 막을 수 없고, 그래서 약하지만 강하다는….


물론 그녀의 말대로 아사히신문이란 일본 최고품질 신문의 종사자들(기자들)이, 온갖 잘난척을 다하는, 그래서 잘나서 피곤한 사람들일 것은 분명하지만, 그래도 양질이기에 지방판 데스크의 어처구니 없는 이메일 탄원에 응해줬으리라고 봅니다. 이런 아량, 한국에 있나요? 궁금해집니다.


몸에 주렁주렁 달린 코드들이 삶을 손쉽게는 해주지만…

손쉬운 게 최고면 ‘매트릭스’의 잠든 군중들이 최고라고?


이렇게 ‘홀로’ 일을 추진해가면서, 이나가키는 세상과 자신을 연결하는 끈들을 하나하나 끊어갑니다.


처음에는 전기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전기를 통째로 끊는 게 아니라 전기 사용량을 절반으로 줄이려 작정합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난 뒤 “이 모두가 원자력발전 탓. 원자력 발전으로 충당하는 전기가 절반 정도라니 내가 사용하는 전기를 절반으로 줄이자”고 홀로 작정한 그녀는 벼라별 수단을 다 써가며 전기 사용량 줄이기에 나섭니다.


하지만, 전기라는 게 기본사용량(냉장고가 쓰는 것 같은)이란 게 있는지라, 아무리 절약한다고 해도 실제로 주는 전기료는 거의 없다는 게 그녀의 경험이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전기세를 절반으로 줄일 수 없다는 사실을 경험한 그녀는, “그래? 그럼 지금부터는 전기라는 것이 아예 없는 것으로 생각하자”고 밀고 나가고, 그래서 마침내 절반 전기값을 실현해냅니다. 그녀가 이뤄낸 것이, 그 전의 전기세가 월 3000엔(약 3만 원) 가량이었으니 월 1500엔(약 1만 5천 원)으로 줄이는 것이었다니, 참 전기를 조금도 쓰긴 씁니다.


전기 아끼기로 시작된 그녀의 코드 하나씩 뽑아나가기


이렇게 전기를 줄여나가던 그녀는 마침내 냉장고의 코드도 뺍니다. 다른 전기와는 달리 냉장고의 전기는 생명과 직결되므로(상한 음식을 먹으며 죽을 수도 있으므로), 냉장고 코드 빼기는 정말 죽고살기의 결기가 아니면 힘듭니다. 하지만 이나가키는 해냅니다.


채소는 말려서 보관하다가 먹기 직전에 물에 풀어 된장국에 넣고, 전기밥솥이 없으니 밥도 말렸다가 먹고…. 헌데, 이렇게 먹는 밥이 맛있답니다! 말려서 먹는 밥은 보슬보슬해서 맛있고, 말린 채소는 또 그것대로 맛을 내주고.


냉장고 없는 시대를 사는 그녀는 ‘에도 시대처럼 산다’는 소문이 나고, 언론의 인터뷰가 줄을 잇습니다.


냉장고에 가득 찬 음식들. 냉장고가 각 가정마다 없던 시절에는 음식을 가게의 냉장고가 보관했다. 이렇게 음식을 쟁여놓고 맛없게 먹는 거, 잘하는 일인가?




냉장고 없는 식사에 대한 그녀의 소감입니다.


“매일 비슷한 음식만 먹게 되었다. 밥, 된장국, 야채절임, 그리고 조림반찬 하나. 에도시대 같은 식생활이긴 하지만, 대신 요리에 드는 시간이 대폭 줄어들었다. 지나치게 맛있지가 않아서인지, 오히려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중략) 너무 맛이 있으면 매일 먹을 수 없다. 진수성찬은 가끔 먹어야 제맛이다. (중략) 손이 가는 요리를 먹고 싶을 땐 외식을 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정하고 나니 일부러 나가서까지 복잡한 음식을 먹어야 하는지 의심스러워졌다.(‘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 232~233쪽)


요즘 한국 TV는 틀기만 하면 그저 먹는 타령이지요? 지방에 가서 별미를 먹고, 연예인끼리 모여서 시골 가서 끼니 해먹으니 맛나 죽겠고, 야생 정글에 가서 맛난 거 잡아먹으니 맛있어 죽겠고…. 인스타그램엔 먹스타그램 투성이고…. 도대체 싸구려 음식 먹으면서 왜 그거 사진 찍어서 인스타에 올리는지, 정말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맛난 거 먹는 것도 좋지만, 그렇게 밤낮없이 맛난 거 찾아다니는 거 피곤하지도 않나요?


에도시대라면 한국이라면 조선시대입니다. 냉장고 없던 조선시대-에도시대에도 사람들은 맛나게 밥을 먹었고, 그런 식생활을 이나가키는 하고 있답니다.


냉장고를 끊었더니 밥맛이 좋아지고 다이어트도 된다고라?


냉장고와 밥에 대한 그녀의 문장들을 모아봤습니다. 냉장고를 끊기 전에 그녀는 에어컨과 전기청소기를 끊는데 그 문장부터 시작합니다.


냉난방을 그만두었더니 오히려 더위와 추위를 좋아하게 되었다. 인생에 없어서는 안 될 양념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 76쪽)


청소기를 졸업했더니, 청소가 좋아졌다. 전자레인지를 졸업했더니, 밥이 맛있어졌다. 냉난방기기를 졸업했더니, 더위와 추위가 친구 같은 존재가 되었다.(‘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 106쪽)


다이어트는 쉽다. 냉장고만 졸업하면 된다.(‘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 138쪽)


냉장고가 없던 시절, 사람들은 음식을 나눠 먹었다. (중략) 우리는 이제 ‘차이’가 없으면 풍요로움을 느낄 수 없게 되어버렸다.(‘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 194쪽)


누군가 1억 엔을 주며 냉장고를 써달라고 해도 나는 한 치의 주저함 없이 단번에 거절할 것이다. 정말이다! 어떻게 탈출한 감옥인데 자진해서 다시 들어가겠는가.(‘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 212쪽)


이나가키는 에어컨을 끈 뒤 무더위 속에서도 미묘한 기온의 차이를 알게 되었고(사실 중장년 세대는 에어컨 없는 세상을 잘도 살았잖아요? 땀이 비오듯 쏟아지는 버스 안에서도 ‘그래, 이게 여름이지’라고 느꼈었던 기억이 납니다), 전자레인지를 없앴더니 맛있는 밥을 바로바로 지어먹는 밥맛을 알게 됐고, 냉장고를 없앴더니 에도시대 음식과 같은 맛을 느끼게 되었다고 합니다.




“없어야 호사를 누린다”니 이 무슨 궤변?


이런 경험을 하면서 그녀는 탄식합니다. 모두 ‘퇴사하겠습니다’에서 뽑은 인용문들입니다.


‘없다’는 게 훨씬 더 사치스럽습니다. 훨씬 더 호사입니다.(53쪽)


돈이 없는 편이 즐거운 일도 세상에는 있다는 걸 깨닫(83쪽)


‘전기가 없다’는 전제하에 생활하는 것이었습니다. (중략) 현관에 잠시 서서 눈이 어둠에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립니다. (중략) 전기 안 켜도 아무렇지 않다니까요, 정말로!(101쪽)


의외로 불빛이란 게 어딘가에는 있기 때문에 가만히 있으면 어렴풋이 실내가 보여요. (중략) 텔레비전도 없습니다. 그러면 그곳에 어둠과 고요함에 나타납니다. 이게 실로 마음이 차분하고 고즈넉해지는 거예요. 어두우니 오감도 예민해집니다. 집 안에 소리가 없으니 창 밖에서 바람 소리며 벌레 우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이것 참, 풍류가 따로 없구나 싶지요.(102쪽)


‘없는’ 것에도 풍요로움이 있다면, 지금까지의 노력은 대체 무엇이었을까요?(103쪽)


‘없으면 못 사는 것’ 따위,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닐까.(106쪽)


그리고 나는 이때, 어쩌면 태어나 처음으로, ‘자유’의 의미를 깨달았는지도 모릅니다.(107쪽)


사고 싶은 거 다 살 수 있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다구요?


없는 쪽이 더 호사스럽다는 경험과 생각, 없기에 난생 처음으로 자유의 의미를 깨달았다는 그녀의 말에는 진짜 전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흔히 돈만 있으면 자유롭다고 생각하고, 돈이 없기에 부자유스럽다고, 노예 같은 인생을 살고 있다고 푸념합니다. 이런 생각에도 일리는 있지만… 정말 돈만 많으면 자유스러워지나요?


돈 많은 사람의 행태는, 예컨대 이런 겁니다. 예전에 마이클 잭슨이 살아 있을 때 미국 TV에서 본 건데, 라스베이거스 베네치아 호텔의 편집숍에 가서 마이클 잭슨이 이럽니다.


온갖 고가품으로 가득 찬 매장의 절반을 죽 손가락으로 반원을 그리고 가리키면서 “이거 다 주세요”라고. 중세 시대의 기사 갑옷처럼 정말 값나가는 물품으로 그득한 편집숍의 절반을 단 한칼에 사다니!!!




부러운가요? 저는 안 부러워요. 그 많은 물건을 사서 도대체 뭘 하려고 “여기서 저기까지 다 주세요” 그러나요. 그 많은 짐이 집에 배달돼 이것저것 만지작거리고 시험작동해보고… 저는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전기를 없앴기에, TV를 숙청해버렸기에 이나가키는 난생 처음으로 대도시의 도심에서도 바람 소리, 벌레 소리를 듣는 풍류를 즐기게 됐다고 합니다. 바보상자 앞에서 바보 되기와, 전기 없애고 바람소리 듣는 풍류 중 어느 쪽을 고르겠냐고 저한테 물어보면 저는 당장 “풍류요”라고 대답하겠네요.


이나가키는 독한 여자입니다. 온갖 생활의 이기가 있는 세상에서, 에도시대 사람처럼 먹고 자는(식숙) 생활은 보통사람에겐 끔찍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밀어붙여 보고 거기서 자유를 경험합니다. 생활의 이기에 의존하지 않기에 경험하는 자유입니다.


남들이 뭐라건, 내 마음이 “그래, 할만큼 했다”라고 해줄 때까지 해보기


물론 그녀가 홀로 시도한 모든 일에서 다 성공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녀의 책에는 ‘끊은 성공기’만이 쓰여 있지만, 끊으려 했지만 실패한 일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의 원칙은 이렇습니다.


회사와의 싸움이 됐건 은혜 갚음이 됐건 ‘할 만큼 했다’는 기분을 느껴야 하는 게 아닐까요?(‘퇴사하겠습니다’ 113쪽)


뭐가 됐건, “그래, 난 할 만큼 했다”고 스스로 생각하기에 만족하기 전에는 홀로 뭐 하기를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남들이 뭐라 하건 말건 신경쓰지 않고, 홀로 하기에 나 스스로 할만큼 했다고 만족할 때까지 밀고나간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렇게 밀고나가면 반드시 뭔가 성과가 있게 된다는 것이지요.


요즘은 SNS의 시대입니다. 연결의 시대이지요. 하지만 홀로 서지 못하면 도대체 연결의 의미가 있나요? 홀로 선 사람들끼리의 연결은 재밌고 의미있겠지만, 홀로 서지 못하는 사람의 연결은 도대체 뭔 의미가 있으며, 서로에게 기대는 민폐만 되는 것 아닐까요?




이에 대해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연결’이 앞으로의 사회의 키워드가 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나 역시 동의합니다. 그렇지만 연결되려면 우선 혼자가 될 필요가 있습니다.(‘퇴사하겠습니다’ 203쪽)


나 홀로 삶을 사는 그녀의 자세는 이렇습니다.


이런 엉뚱한 짓을, 나 말고 대체 누가 하겠어! (중략)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아무래도 좋다. 누구 하나 칭찬해주지 않아도 좋아. 이건 내 마음의 문제니까!(‘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 168쪽)


홀로서기 못하는 사람들이 연결을 만들면?

그게 바로 한국의 암덩어리 ‘3연’이지요


홀로 끝까지 해보고, 그래서 혼자서기를 하고, 그렇게 혼자서기를 한 뒤 사람들과의 연결을 즐기는 소셜네트워크의 세계로 돌입하는 그녀의 값진 경험은, 자본주의 마케팅에 세뇌가 된 채로 사는 현대 한국인들에게 정말 좋은 교훈이 될 듯 합니다.


그래서 저도 결심해봅니다. ‘남 탓 하지 말자. 남들이 뭐라건, 어쩌건. 너는 너의 할 일을 너 스스로 하면 된다. 네 마음에 흡족할 때까지 너 혼자서 하면 된다’고.


이나가키의 ‘연결되려면 우선 혼자가 될 필요가 있다’는 명제를 생각해봅니다.


홀로 설 줄 아는 사람들이 모임을 이루면, 그 모임은 재밌겠죠? 각자 자기 인생과 스토리가 있으니까, 할 얘기도 많을 거예요. 문제가 생기면 각자 독자적인 판단을 내려 문제 시정이 나설 수도 있고, 정 아닌 방향으로 모임이 흐른다 싶으면 탈퇴할 때 하더라도 할말은 똑 부러지게 할테니 모임이 산으로 올라갈 일도 드물 것이라 생각됩니다.


한국 사회의 암덩어리 3연에 제4연 '흡연'까지 추가해야 한다는 조크 작렬ㅋㅋ


반대로 홀로 서기를 못하는 사람이 연결을 하면 뭐가 되지요? 바로 우리 사회의 암덩어리라는 3연, 즉 혈연-지연-학연이 되는 거 아닌가요? 이 3연에 죽고 못 사는 사람은 연이 없으면 쓰러지는(아니, 이익을 못 보는) 사람일 겁니다. 이런 3연지기가 네트워크를 해서 뭉쳐봐야 똑 부러지게 발언을 하거나 책임을 맡는 사람도 없고, 그저 모여서 목소리만 크게 하면서 ‘저들편이 아닌 우리편의 이익’(솔직히 말하면 우리도 아니고 내 이익이죠)만 도모하는 해악이 됩니다.




홀로 서지 못하는 사람이 네트워크를 하면 어찌 되지요? 저는 아마 요즘 젊은층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밥 먹고 커피 마시면서도 대화 않고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모습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바로 앞의 살아있는 리얼휴먼과의 대화를 못한다면 멀리 떨어진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과 아무리 소셜네트워크를 잘한들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습니다.


‘할만큼 했다’라는 탄식이 입에서 터져나올 때까지, 딴 사람 끼워주지 않고 혼자서 끝까지 해보는 ‘아프로(아프리카식) 헤어의 여자’ 이나가키가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입니다.


독신녀라고 할 수 있었다고라?

독신녀라서 할 수 없는 것도 1만 가지 아닌가?


그리고 사족으로 한 마디 더.


전직 기자와 만나 얘기하던 중 이나가키 애기를 꺼내니 그 왈 “책 읽어보진 않았는데 기사 봤어요. 헌데, 그 혼자 사는 여자니까 가능한 거 아닌가요?”


그런 측면, 물론 있지요. 딸린 식구 없으니 혼자 결심하고 실행하면 되니. 하지만 혼자 사는 여자이기 때문에 할 수 없는 일은 또 좀 많아요? 혼자 사는 여자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을 1만 가지 찾을 수 있다면 반대로 혼자 사는 여자라서 할 수 없는 일의 목록도 그 정도 만들 수 있지 않나요?


처자식 딸린 남자이기에 할 수 없는 일도 그만큼 많지만, 처자식이 있기에 또 할 수 있는 일 역시 1만 가지쯤 만들 수 있는 거 아닌가요? 특히 자식이 이미 장성했다면. 이나가키처럼 사는 거, 물론 아무나 할 수 있는 거 아닙니다. 하지만, “난 이래서 안 돼”부터 내세운다면 결국 영원히 남이 만들어 놓을 틀 안에서 사는 수밖에 없지요~



<책읽는 북손탐의 재밌는 동영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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